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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주식은 아직도 옥수수로 만든 토르티야(tortilla)입니다. 전통은 거의 변하지 않은 상태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낟알과 라임을 함께 요리하여 껍질을 없앤 석판 위에 올려 놓고 맷돌로 잘게 갈아냅니다. 작은 둥근 볼에 도우(dough) 만들고 손으로 얇은 원형 케이크 모양으로 다듬거나 타말레(tamale) 싸서 채운 먹으면 됩니다. 토르티야는 음식을 싸거나 담아내는 용도가 무궁무진합니다. 타코(taco) 엔칠라다(enchilada) 같은 정통 멕시코 음식에는 먹는 도구로 사용되고 토스타다(tostada)에서는 접시로도 사용되는 , 매우 다양합니다. 미국에서는 이상 토르티야를 단순히 이방인의 빵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인구가 늘어났다는 것도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원인 하나라고 있습니다.


북부 멕시코 지역과 미국의 상당수 지역에서 토티야는 밀가루로 빵을 의미한다. 밀가루 토티야는 멕시코 음식의 기초라 있으며, 비교적 최근에 수입되었다. 토티야가 인기 있는 것은 낮은 가격과 보관이 쉽기 때문이다. 실제 토티야는 시장에서 쉽게 구할 있는 일반 밀가루를 사용한다.


기원 3000 부에블라 연방의 발레 테우아칸(Valle de Tehuacán)” 계곡 발굴 작업을 통해 7,000 이상 이어져 고대 중앙 아메리카 인들의 식단에 대해 밝혀낼 있었다. 고대인들은 사냥에서 얻을 없는 영양소를 옥수수, 식물의 뿌리 그리고 열매로 보충했던 것이다. 요리사이자 멕시코 식품 역사학자인 아구스틴가이탄(AgustínGaytán) 그릴리 트리뷴(Greeley Tribune)”지에 다음과 같은 기사를 작성하였다.

 

기원 3000 , 멕시코의 시에라 마드레(Sierra Madre)산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알맹이가 크고 영양가가 높은 식물을 얻기 위해 야생 식물을 교배하였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옥수수이다. 멕시코 인류학자이자 옥수수 역사학자인 아르투로 와르만(Arturo Warman) 옥수수는 예술, 건축, 수학 그리고 천문학이 발달했던 마야나 아즈텍 중앙 아메리카 문명권에서 발달하였다고 주장한다. 토착문화에서는 옥수수를 인류애의 기초로 간주하였다는 점에서, 옥수수의 중요성은 떨어지지 않았다. 옥수수는 삶의 씨앗으로 숭배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신은 옥수수로 인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1400
년대 스페인 사람들이 지금의 멕시코 지역에 도착한 이후, 중앙아메리카의 토착문화는 정교하게 발전하였다. 그리고 토착 과일, 사냥감, 재배된 공과 옥수수, 집에서 키우는 칠면조가 중앙 아메리카 음식문화에서 기초를 이루게 된다.


1519에르난도 코르테스(Hernando Cortez)로도 알려진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 1485-1547) 비롯한 정복자들이 1519 4 22 신세계에 도착한 이후, 이들은 원주민(아즈텍 멕시코인) 평평한 옥수수 빵을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나우아틀(Nahuatl ) 원주민들은 이를 틀락스칼리(tlaxcalli)라고 불렀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를 토티야라 불렀다. 1520 코르테스가 스페인의 찰스 5세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장에서 사람들이 옥수수 또는 인디안 옥수수를 판다고 기록하고 있다.

 

도시에는 많은 광장이 있으며, 광장에는 시장 그리고 물건을 사고 파는 장소가 있습니다.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은 6 이상입니다. 시장에서는 세상에서 쓰고도 남을 만큼 모든 종류의 물건과 필수품을 팔고 있습니다. 음식을 예로 들면, 옥수수나 인디안 옥수수는 낟알로 거래되거나 또는 빵의 형태로 팔리고 있습니다. 다른 섬과 육지 지역에서는 낟알로 옥수수를 좋아합니다.


1529 프란시스칸 프라아르 베르나르디노 사아군(Franciscan friar Bernardino de Sahagun)(1450-1590) 기념비적인 저서, 새로운 스페인의 사물에 관한 일반 역사(Historia general de lascosas de Nueva Espana)에서 보면, 아즈텍 식단은 옥수수와 토티야, 타말레스(tamales)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고추를 기초한다는 사실을 있다. 저자는 음식 역사의 아버지 명으로 고려할 있다. 그는 그가 발견한 음식 관련 정보를 나우틀 언어에서 스페인어로 번역하고, 정리하였다. 그의 작업은 아즈텍 음식과 식사 문화에서 가장 완벽한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다.

원주민들을 기독교로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사아군은 새로운 스페인(멕시코) 보내졌는데, 그곳에서 그는 아즈텍 언어로 토착 역사와 관습에 관한 번째 개요서를 편집하였다. 그는 7 동안 가장 우수한 원주민 권위자들과 협력하여 일을 수행하였다. 그는 아즈텍 역사와 사람, 아즈텍 분명, 아즈텍 언어 문법과 사전 12권의 저서를 남겼다.


1940년대 – 1940년대 50년대에, 처음으로 마사(masa) 제작 습식 곡물 분쇄기에 소형 가스 엔진과 전기 모터가 널리 사용되었다. 토티야에 사용되는 마사를 제작하는데 핸드 프레스 또는 핸드 패팅을 사용하였다.


1960년대 토티야를 만드는데 원래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토티야-제작 기계가 개발되면서 2초마다 뜨끈하고, 김이 나는 토티야를 제작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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